왜 이직이 아니라 전직인가는..
아무래도 게임탓이겠지? ㅎ
게임도 보통 10렙쯤 찍으면 전직쿠폰이나 전직 기회를 주던데
우리도 각자 강사로 최소 10년씩은 훌쩍 넘겼으니
전직타이밍으론 조금 늦은 셈인가.
학원을 접기로 하고
이제는 "Once I used to be a teacher," 할 거니까.. 마지막 기록들을 남겨본다.
입구 컷.
코로나로 인해 들어오면 아이들이 지문인식기로 출석체크 뒤
사진 앞의 손소독제를 바르며 강의실로 이동했다.
카운터에는 학원법상 눈에 보이는 곳에 게시해두어야 하는
강사목록표, 사업자등록증, 학원보험, 교습비게시표 등이 있다.
예전에 가르치고 졸업해서 떠난 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하고 있는 사업으로
드라이플라워+캘리그래피 액자를 주문해서 올려뒀었다.
액자엔 우리가 학원하면서 가장 기본으로 생각했던,
가장 많이 와닿았던 도종환님의 시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
강사실과 1, 2강은 사진에 없다.
3강은 수학강의실로 썼던 곳.
TV에 컴퓨터를 연결하고, 알리에서 주문해서 TV 테두리에 터치 센서를 부착하여
대형 터치패드로 변신시켜 강의할 때 사용했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 초에, 그리고 아픈 아이들이 있을 때마다 온라인 수업하느라
TV 위엔 아주 옛날 옛적 총각 때 썼던 캠이 부착되어 있다.
여전히 3강 전경.
거리두기로 인해 아이들 책상을 띄엄띄엄 두었다.
사진상의 칠판은 우리가 예전 학원에 있을 때 5강에서 썼던 칠판.
이곳으로 이사오며 칠판들을 꾸역꾸역 다 챙겨왔었는데
거의 쓸 일이 없었다.
자습실로 썼던 4강.
고은이가 색깔 배치를 했었다.
독서실 책상 사서 조립했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스태프룸 지나서 내 강의실인 5강.
사진 상에 없지만 프로젝터가 천장에 달려있어서
주로 프로젝터로 수업을 했었다.
천장에 형광등이었던 것들 죄다 LED 등으로 바꾼다고 먼지 뒤집어 써가며
등 공사 했었는데... 어딜 가나 등 공사는 참 열심히 하며 사는 것 같다.
반대쪽 입구컷.
책상 3개가 참 기가 막히게 들어가도록 짜여져 있던 곳.
이젠 저 책도 모두 처분했고,
강의실들도 탈바꿈 중이다.
책은 가지고 있는 것 모두 재활용센터에 전화하여
아저씨가 오셔서 차로 가져가셨다.
하필 태풍 장미가 울산에 올라온 날이라
비가 오는 바람에 책 무게는 못 잰다고
그냥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하나 주고 가셨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거라 기분이 좋았다.
이제 일은 저질렀으니
수습해가는 과정을 간간히 포스팅하려 한다.
남들 퇴근시간을 기대할 때 출근해서 (2~3시)
남들 한밤중일 때 퇴근하는(밤 12시) 생활을 이제는 그만할 수 있을까.
매년, 사춘기인 아이들을 만나고
매년, 수능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꽃피고 단풍 물들 땐 중간고사, 기말고사라
꽃놀이, 단풍구경은 꿈도 꾸지 못했고
일 년 중 4달은 시험 기간으로 주말 없이 살았는데
이젠 나도 평범하게 남들 출근할 때 출근하고,
남들 퇴근할 때 퇴근하고, 주말에 아이들과 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래. 화이팅.